- 공유하고 싶어서 제가 갖고 있는 책의 일부를 타이핑했습니다.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일정기간 게시 후 삭제하겠습니다.
-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 꼭 사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주1) 이 책은 고참 악마가 조카인 견습생 악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악마의 관점에서 쓰였습니다.
주2) 이 악마는 하나님을 '원수', 인간을 '환자'라고 칭하고, 악마 세력의 머리를 '우리 아버지'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주3) 8번째 편지와 9번째 편지는 연관된 주제를 다루므로 같이 보시길 추천합니다.
< 8번째 편지 >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그래, "요즘 환자의 종교적 국면이 잦아들고 있어 큰 희망을 품고" 있다고? 안 그래도 슬럽갑Slubgob이라는 늙은이를 학장 자리에 앉힌 뒤로 악마양성대학이 풍비박산났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이제야말로 정말 확실히 알겠구나. 도대체 그놈의 학교에서는 기복의 법칙도 가르치질 않는단 말이냐?
인간은 양서류다. 반은 영이고 반은 동물이지(원수가 그렇게 역겨운 잡종을 창조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은 우리 아버지께서 원수를 지지하지 않기로 하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는 한편, 동물로서 유한한 시간 안에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야. 시간 안에 있다는 건 곧 변한다는 뜻이니까.
따라서 인간이 불변성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은 바로 이 기복의 과정을 거치는 데 있다. 골짜기로 떨어졌다 꼭대기로 올라갔다 하며 끊임없이 후퇴했다 복귀했다 해야 한단 말이지. 네가 환자를 자세히 관찰했다면, 그의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에 이러한 기복이 있다는 걸 알아챘을 게다. 일에 갖는 흥미도, 친구들을 향한 애정도, 몸의 욕구도 죄다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은 육체적으로 풍성하고 활기차며 쉽게 감동하는 시기와 무감각하고 결핌된 시기를 번갈아 겪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네 환자가 겪고 있는 메마르고 무덤덤한 느낌은 네 분별머리 없는 착각처럼 네 솜씨 때문이 아니라, 그때그때 잘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하다 이 말씀이야.
이 현상을 최고로 잘 활용하려면, 먼저 원수가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를 생각한 다음 그 반대를 택하면 된다.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 걸 알면 아마 좀 놀랄 게다.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그 이유를 알겠느냐?
우리한테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식량에 해당한다. 인간의 의지를 흡수해서 우리 자아의 영역을 확장하는 게 목적이니까. 그러나 원수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이와 전혀 다르지. 원수가 인간을 사랑한다느니 원수를 섬기는 게 외려 완벽한 자유라느니 하는 말들이 단순한 선전문구가 아니라(우리야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만) 소름끼치는 진실이라는 점은 우리도 직시해야 한다.
원수는 자신을 작게 복제해 놓은 이 혐오스러운 인간들 - 원수에게 흡수당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원수의 뜻에 따른 결과, 규모는 작지만 어쨌든 원수의 삶을 닮게 된 것들 - 로 우주를 우글우글 채울 생각을 정말로 하고 있다구. 우리가 원하는 건 키워서 잡아먹을 가축이지만, 그 작자가 원하는 건 처음엔 종으로 불렀다가 결국 아들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빨아들이고 싶어하지만 그는 내뿜고 싶어 하지. 우리는 비어 있어 채워져야 하지만 그는 충만해서 넘쳐 흐른다. 우리의 전쟁 목적은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다른 존재들을 모조리 삼켜 버리는 세상이지만, 원수가 바라는 건 원수 자신과 결합했으면서도 여전히 구별되는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이야.
바로 이 지점에 골짜기가 끼어든다. 원수는 아무 때나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서 인간의 영혼이 감지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걸 활용하지 않는지 너도 궁금했겠지. 그러나 '불가항력'과 '논의의 여지 없음'은 원수가 세워 놓은 계획의 본질상 사용할 수 없는 무기임을 이젠 알겠느냐. 단순히 인간의 의지를 제압(원수가 최고로 미약하고 가벼운 정도로만 그 존재를 드러내도 인간의 의지는 간단히 제압당하고 말걸)하는 건 원수의 계획에 도움이 안 돼. 그는 강간은 못 한다. 사랑을 호소할 뿐이지. 이게 다 꿩도 먹고 알도 먹겠다는 천박한 생각 때문이야. 피조물과 하나가 되면서도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지니게 하겠다니, 원. 그러니까 단순히 인간들을 싹 없애 버리거나 동화시켜 버리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지.
물론 원수도 처음에는 약간 제압할 태세를 갖춘다. 실제로는 미약하게 드러낸 것인데도 인간들에겐 굉장해 보이는 임재, 달콤한 감정이 일어나면서 유혹을 쉽게 이길 수 있는 그런 임재를 경험하게 해 준단 말이지. 그러나 이런 상태가 오래 가진 않는다. 원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후원이나 장려책들을 죄다 거두어들이니까. 물론 실제로 거두어들이는 건 아니다. 인간들이 의식하는 경험의 수준에서 그렇게 느껴진다는 게지.
원수는 피조물들이 제 힘으로 서게 내버려 둔다. 흥미는 다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을 때에도 의지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게 하겠다는 속셈이지. 인간은 꼭대기에 있을 때보다 이렇게 골짜기에 처박혀 있을 때 오히려 그 작자가 원하는 종류의 피조물로 자라 가는 게야. 그러니 이렇게 메마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야말로 원수를 가장 기쁘게 할 수밖에.
우리는 혼다들을 밥상에 오를 식사거리로 생각하는 판이니 끈임없는 유혹을 통해 질질 끌고 와도 무방할 뿐 아니라, 그들의 의지를 방해하면 할수록 좋다. 하지만 원수로서는 우리가 인간을 악으로 유혹하듯이 미덕으로 '유혹'할 수는 없는 일이지. 제 바람대로 인간 스스로 걷도록 가르치려면 부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지 별 수 있겠느냐. 그러다가 넘어져도 계속 걷겠다는 의지만 보이면 그 작자는 좋아라 한다구.
그러니 웜우드, 속지 말거라. 인간이 원수의 뜻을 따르고 싶은 갈망을 잃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원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왜 그가 자기를 버렸는지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그때보다 더 우리의 대의가 위협받을 때는 없다.
물론 골짜기가 우리 편에 제공해 주는 기회도 있긴 하지. 다음주에는 그런 기회들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힌트를 몇 가지 주도록 하마.
너를 아끼는 삼촌,
Screutape
< 9번째 편지 >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지난번 내 편지를 읽고 느낀 바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환자가 지금 겪고 있는 침체와 '건조함'의 골짜기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 한, 그의 영혼을 얻긴 글렀다는 건 똑똑히 알았겠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이용 방안을 생각해 보자.
먼저,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 골짜기를 지나가는 시기에는 감각적 유혹, 특히나 성적 유혹이 매번 잘 먹혀든다. 육체적인 활력이 넘치는 꼭대기 시기일수록 잠재적 욕구도 더 커질 텐데, 이게 웬 소리냐구? 꼭대기에 있을 때는 저항력도 최고로 높은 상태라는 걸 잊으면 안 되지. 불행히도 정욕을 일으키기에 좋은 건강과 활력은 일이나 놀이, 생각, 무해한 오락에도 쉽게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세계가 삭막하고 냉랭하고 공허할 때 외려 이런 공격이 성공할 가능성이 큰 게야.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꼭대기에 있을 때의 성욕과 질적으로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인간들이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들척지근한 현상으로 기울 가능성은 훨씬 적으면서 성도착에 빠질 가능성은 훨씬 크고, 종종 성적 욕구를 맥풀리게 만들어 버리는 사랑의 부산물 - 관대하고 상상력이 넘치며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한 - 에 오염될 가능성은 훨씬 적지. 성욕도 육체의 다른 욕구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착실한 술주정뱅이를 만들려면, 행복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친구들과 즐기고 있을 때 술을 권하기보다는, 침체되고 지쳐 있을 때 일종의 진통제로 마시도록 밀어붙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어떤 쾌락이든 건전하고 정상적이며 충만한 형태로 취급하는 건, 어떤 점에서 원수를 유리하게 하는 짓임을 잊지 말거라. 우리가 쾌락을 사용해 수많은 영혼들을 포획해 왔다는 건 나도 안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쾌락은 원수의 발명품이지 우리 발명품이 아니지 않느냐? 원수는 쾌락을 만들었지만, 우린 지금껏 수없이 많은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쾌락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원수가 만든 쾌락들을 인간들이 즐기게 하되, 단 원수가 금지한 때에, 원수가 금지한 방식과 수준으로 즐기도록 유인하는 게 고작이지.
그래서 우리 악마들은 어떤 쾌락이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지극히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처음에 쾌락을 만든 자의 흔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즐거움 역시 전혀 느낄 수 없게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다. 쾌락은 감소시키고 그에 대한 갈망은 증대시키는 게 우리가 쓰는 방식이야. 사실 이 편이 효과도 더 확실하고 스타일도 더 낫지. 인간의 영혼을 손에 넣되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아버지의 마음에 진정한 기쁨을 드리는 일이다. 그런데 골짜기는 이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지.
골짜기를 이용해 먹기에 더 좋은 방법도 있다. 이건 골짜기에 관한 환자 자신의 생각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늘 그렇듯이 이 작전의 첫 단계 역시 그의 마음속에 지혜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기복의 법칙에 대해서라면 꿈에도 생각지 못하게 하거라. 처음 회심했을 때 경험한 열정은 영원무궁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이고 영원히 지속되어야만 했다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건조함 역시 그와 똑같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라고 믿게 하라구.
이런 오해를 환자의 머릿속에 잘 고정만 시켜 놓으면, 그때부터는 다양하게 작전을 진행시킬 수가 있다. 작전 방향은 네 환자가 쉽게 절망하는 비관형이냐, 모든 일이 잘 되리라고 믿는 낙관형이냐에 달려있지. 비관적 인간형은 요즘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만, 혹시 네 환자가 그런 희귀종 가운데 하나라면 만사 간단하다. 경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요즘 같은 때엔 식은 죽 먹기야) 적당한 성경구절에 곤심을 끈 다음,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 예전 감정을 회복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를 계속하도록 부추길 수만 있다면, 게임은 끝난거나 다름없어.
환자가 좀더 희망적인 인간형일 경우에는 먼저 현재의 영적 저기압 상태를 묵인하게 한 다음, 이런 상태도 뭐 그리 심각한 침체는 아니라고 스스로 설득해 가며 차츰차츰 그 상태에 만족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두 주일만 유지하면, 회심했던 당시의 열정이 좀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 수도 있지. 환자에게 만사에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 주거라.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해 놓으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한테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
또 다른 방법은 환자의 신앙을 정면 공격하는 것이다. 골짜기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게 만들었다면, 이전의 모든 단계들이 그러했듯이 이 '종교적 단계' 또한 이제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고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 물론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것에 흥미를 잃었다'는 명제가 '이것은 거짓이다'는 명제로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지. 하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넌 이성이 아니라 전문용어에 의존해야 한다. 단계라는 단순한 단어도 십중팔구 큰 효과를 낼 게야.
인간이란 족속이 다 그렇듯이 환자도 예전에 여러 단계를 거쳤을 테고, 자신이 빠져나온 그 단계들에 대해 노상 우월감을 느끼거나 생색을 내고 있겠지. 자신이 진정으로 그 단계들을 비판해서가 아니라, 이젠 그 단계들이 과거지사가 되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말이다('진보'니 '발전'이니 '역사적 관점' 따위의 몽롱한 환상을 환자의 허영심을 잔뜩 만족시켜 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현대의 전기물도 많이 읽히고 있겠지? 전기 속의 인물들은 언제나 여러 단계를 빠져나오고 있지 않더냐?)
이제는 좀 감이 잡히는지? 참과 거짓이라는 명백한 대립항을 생각지 못하게 하거라. '이건 그저 하나의 단계일 뿐이야', '나도 다 거쳐왔지' 하는 식의 교묘하고도 아리송한 표현들을 잘 사용하도록 하고, '성장기'라는 복된 단어도 잊지 말고 써먹도록 해라.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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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minj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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